한식[寒食]
한식의 다른 이름
고초일[苦괴로울 고 草 풀 초 日날 일], 금연일[禁煙日], 숙식[熟익을 숙 食 밥 식]
관련속담 "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
관련풍속 성묘[省살필 성 墓 무덤 묘], 산신제(서울지역), 개사초(改고칠개 莎 항부자 사 草 풀 초],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던지기
한식의 정의
동지(冬至)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금연일[禁煙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
한식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이 아니다
따라서 한식은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2월 한식과 3월 한식을 구분하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3월에 한식이 있으면 지역에 따라서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
한식의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 나아갈 진]나라의 공자 중이[重무거울 중 耳귀 이]를 위해 헌신했고, 중이는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 : 재위 .C. 636 ~628]으로 진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의 소멸과 신화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그리고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한국에서 한식을 언제부터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문종 24년(1070년)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따
한식에는 금화와 성묘의 풍습, 투란(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놀이가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한식의 시기가 변하였는데, 고려 후기에는 동지 후 105일이있지만, 전기에는 그보다 7일 정도 빠른 양력 3월30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민간에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여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불위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조상숭배와 관련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따
집안에 따라서는 사당에서 조상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서울지역에서는 제사에 앞서 먼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성묘의 대상은 기제사를 받는 조상도 있지만,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먼 조상이나 후손이 없는 사람인 경우도 있다
또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는 날 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소에 개사초(잔디를 새로 입힘)를 하거나 비석 또는 상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한다
한편, 한식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소를 부려보기도 한다
또 한식 무렵이면 볍씨를 담근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먹는 고초일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넣는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데,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 이다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리면 그 반대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치면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식목일[植木日]
식목일의 정의
국민 식수[植樹] 에 의한 애림[愛林] 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
식목일의 제도화 과정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한 것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淸明] 무렵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날이자(676년 음력 2월 25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들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1343년 음력 3월 10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 바로 이날이기 때문이다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0년 4월 5일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거행할 때, 손수 밭을 갈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나무를 심었던 데에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가 날짜를 4월 3일로 옮겨 식목일 행사를 거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소화 천황의 생일이 4월 5일 이었음으로 이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일본에서는 4월 5일을 '녹색의 날' 이라는 명칭으로 '소화의날'로 변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해방이후 1946년에는 미 군정청에 의해 식목일이 다시 4월 5일로 환원, 제정되었으며,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1960년에는 3월 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면서 식목일을 국가기념일 및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61년에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어 식목일이 공휴일로 부활하였고, 1982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1990년에는 일부에서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고 강력하게 제기하기도 했지만, 청명과 한식이 겹치는 날이라 하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2005년부터 식목일은 국가기념일이라는 위상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공휴일에서는 제외 되었다
나무는 못심어도 수초는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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